RBMK 원자로 설계의 특징 및 결함
- 모듈식 생산 목표: 빠르고 모듈화된 생산을 위해 압력 용기(Pressure Vessel) 대신 흑연 블록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원자로 코어가 다른 설계보다 20배 이상 커졌으며, 강화 콘크리트 격납 건물이 부재했습니다.
- 저농축 우라늄 사용: 서방의 4%보다 낮은 1.8% 농축 우라늄을 사용함으로써 비용 절감을 추구했습니다.
- 양의 보이드 계수 (Positive Void Coefficient): 원자로 온도가 상승하여 냉각수(물)가 증기로 변하면 중성자 흡수가 줄어들어 반응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불안정한 특성을 가졌습니다. 이는 과열 시 반응이 가속되는 위험한 설계였습니다.
- 양의 스크램 (Positive Scram): 비상 정지(Scram) 시 제어봉 끝의 흑연이 물을 대체하며 일시적으로 반응 속도를 증가시키는 치명적인 설계 결함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비상 상황에서 오히려 출력이 급증할 수 있었습니다.
조직 문화 및 운영상의 문제점
- 목표와 마감 기한: 생산 목표 달성에 대한 압박으로 RBMK 설계는 소규모 프로토타입 없이 즉시 생산에 투입되었으며, 건설 과정에서 콘크리트 품질, 용접 불량, 난연제 부족 등 많은 단축과 결함이 발생했습니다. 마감 기한에 대한 이의 제기가 불가능한 문화가 만연했습니다.
- HIPPO 문제 (Highest Paid Person’s Opinion): 상급자의 의견이 무조건적으로 수용되는 문화로, 하급자의 안전 우려가 묵살되었습니다.
- 비밀주의: 핵 사고는 국가 기밀로 취급되어 대중뿐만 아니라 다른 발전소 운영자들에게도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습니다. 레닌그라드 원전의 부분 용융 사고나 체르노빌 1호기의 부분 용융 사고가 은폐되었으며, 양의 스크램과 같은 치명적인 설계 결함도 운영자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 책임 전가: 사고 발생 후 조사와 재판에서 설계 결함보다는 운영자들의 규정 무시를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여 진정한 원인 규명과 학습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사고 발생 및 대응
- 안전 테스트: 1986년 4월 25일, 1983년에 수행했어야 할 안전 메커니즘 테스트가 진행되었습니다. 다른 발전소의 가동 중단으로 인해 테스트가 야간으로 지연되고, 낮은 출력 레벨에서 진행되도록 강행되었습니다.
- 운영 실수 및 강행: 운영자의 실수로 원자로 출력이 극도로 낮은 수준(정상치의 5% 미만)으로 떨어졌으나, 부수석 엔지니어의 강압으로 모든 제어봉을 인출하여 위험한 상태에서 테스트를 강행했습니다.
- 폭발: 테스트 완료 후 비상 정지(AZ-5) 버튼을 누르자 양의 스크램과 양의 보이드 피드백이 결합되어 반응도가 급증, 연료 채널 파열 및 두 차례의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흑연 코어가 대기에 노출되어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 초기 대응의 혼란: 경영진은 상황의 심각성을 부인하고, 손상된 코어에 물을 펌핑하는 등 비효율적인 조치를 취했습니다. 스웨덴에서 방사능 수치 이상을 감지한 후에야 소련은 사고를 인정했습니다.
- 수습 노력: 헬기를 이용한 모래, 납, 붕소 투하 시도는 대부분 실패했고, 오히려 방사능 먼지를 확산시키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결국 ‘생체 로봇’이라 불린 인력들이 방사능에 노출되며 임시 석관(Sarcophagus)이 건설되었습니다.